PNU-area American continues success in Korea

부산대 지역에서 끊임없이 성공해 온 한 미국인의 이야기

PNU-area American continues success in Korea

부산대 지역에서 끊임없이 성공해 온 한 미국인의 이야기
By Danny Spatchek




Liam Cullivan hadn’t been a public school teacher in America for long when he decided that type of conventional job just wasn’t for him.

“I walked into the teacher’s lounge and saw a bunch of teachers complaining about their students and waiting for retirement,” he says. “I just thought to myself, ‘I don’t want to be that person in 20 years.’”

After Cullivan, in his own words, “escaped” to Korea, “conventional” is the last word anybody would use to describe his time in the country.

When he arrived, just west of Busan to Masan, Korea in 1995, he had a typical English-teaching job at a hagwon. But he quickly branched out. He moved on, first to Kyungnam University and then to Busan National University (PNU). In his free time, he began teaching boxing. Never one to use his vacations only for actual vacation, he bought a bar in Kanchanaburi, Thailand.


관습적인 일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한 리암 컬리번(Liam Cullivan)은 오래 전 미국에서 공립 학교 교사를 그만두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사 휴게실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앉아 학생들에 대해 불평하며 퇴직을 기다리는 걸 보며 ‘나는 20년 후에 저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컬리번 본인의 표현에 따라 그가 한국으로 “탈출”한 이후, “관습적”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의 컬리번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1995년, 부산에서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마산에 도착한 컬리번은 예상하다시피 전형적인 학원 영어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금세 그 일을 떠났다. 처음에는 경남대학교로, 이후로는 국립부산대학교(PNU)로 옮겼다. 여가 시간에는 복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휴가를 그저 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 그는 태국의 깐차나부리(Kanchanaburi)에 있는 바를 하나 샀다.



This is where his stories begin, stories he himself doubts few will believe and, in turn, seems sheepish to even bring up in the first place. Like the story of how that bar in Thailand came to an end – when the Thai mafia ran him out of the area for refusing to pay tribute money to them. Or stories about “The Blowfish,” the fairly infamous bar he helped run for roughly three years on the SongJeong beachfront. It routinely received the award for “Best Burger in Busan” from a local magazine, but perhaps people remember it most for the waitresses: they wore bikinis and scampered across the road to swim during their breaks (the bar was commonly referred to as “Thailand in the front, Afghanistan in the back”). Or about the night in 2011 when he organized a party on a boat decked out to look like a pirate ship for several busloads of customers of the PNU-area bar he still owns, The Basement.

“We had I think it was 360 people on a boat,” he says in Cullivan’s, the second bar he currently owns, which he opened roughly a month ago.


이것의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자 그 스스로도 믿기 힘든 사실이며, 첫 보기에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태국에서 구입한 이 바가 어떻게 끝났는지에 대한 이야기 –태국 마피아가 내 놓으라고 요구한 돈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지역에서 쫓겨났다- 도 그렇고, 송정 해변에서 약 3년 간 운영을 도왔던, 꽤나 악명 높은 “블로우피쉬”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지역 잡지를 통해 “부산 최고의 버거” 상을 종종 받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곳의 웨이트리스가 더 유명할 것이다. 블로우피쉬의 웨이트리스들은 비키니를 입고 휴식 시간에는 수영을 하려고 길을 건너 달리곤 했다(이 바는 “앞은 태국, 뒤는 아프가니스탄”이라고 묘사되곤 했다). 2011년에는 그가 소유한 부산대 근처의 바 베이스먼트를 찾는 관광버스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해적선처럼 꾸민 보트에서 파티를 기획하기도 했다. 대략 한 달 전 문을 연 컬리번 소유의 두 번째 바에서 그가 말했다. “보트 위에 360명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I remember that party!” comes a shout from across the room from a patron listening in, who happened to be aboard said pirate ship. 

“Try to control that,” continues Cullivan, reminiscing with the man. “We only lost a speaker and broke one bus window. For the number of drunken, crazy foreigners on that ship, we did pretty well. People started climbing up the mast and I’m like, ‘Get down! If we lose you…the boat’s insured, but not for your life!’”

Some stories Cullivan also stands firmly behind.

“My second year in Korea on St. Patrick’s Day, I looked all over for a party. I called all over Itaewon and Busan, but nobody was planning anything. I knew some Philippine singers and I paid them like 200 bucks to sing Irish songs, and then about five Irish-Americans, like me, and 40 Koreans hung out at a place called the Atlantis Pub in Masan and had Korea’s very first St. Patrick’s Day party. I will fight to the death anybody who says anything different. That has been going on every St. Patrick’s Day since. One time, we even had a St. Patrick’s parade where we all marched through the streets of Busan,” he says, before adding with his huge laugh, “I hope there are no pictures of that.”

As much fun as his time in charge of bars in Busan has been, Cullivan says it has also made him proud.

“저도 그 파티 기억나요!” 우연히 당시 그 해적선에 탔던 이들 중 한 명이 방 건너편에서 소리쳤다.

당시를 회상하며 컬리번이 말했다. “열심히 상황을 통제했어요. 부서진 거라곤 스피커 하나와 깨진 버스 창문 하나뿐이었죠. 배 위에서 만취해 날뛰는 외국인들 숫자에 비하면 꽤 잘 대처했어요. 사람들이 돛대를 올라가기 시작했고 저는 이렇게 외쳤죠. ‘내려와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보트는 보험처리가 되지만 당신 목숨은 아니라고요!’” 어떤 이야기에서는 컬리번은 아주 굳건했다. “한국생활 2년차에 맞이한 성 패트릭의 날에는 파티를 위해 이곳 저곳 둘러보고 있었어요. 이태원과 부산 모든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계획을 세워두지 않았더군요. 제가 아는 필리핀 가수들에게 200달러 정도를 지불하고 아일랜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고, 저와 같은 아이랜드계 미국인 5명과 한국인 40명이 모여 마산의 아틀란티스 펍에 모였습니다. 이게 한국에서 열린 최초의 성 패트릭의 날 파티가 되었죠.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과는 끝까지 싸울 겁니다. 그 날 이후로 매해 성 패트릭의 날 파티가 이어져오고 있어요. 한 번은 실제로 부산 거리를 행진하는 성 패트릭 퍼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크게 웃었다. “바라건대 그 때 사진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부산에서 바를 운영해온 시간만큼 그에게는 뿌듯한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Some of the best nights were the live music nights. A lot of great bands have come out of The Basement and other bars in the PNU area: Say Sue Me, Genius, and – they’ll kill me if I don’t mention them – Hajimama.

“There’s been a lot of Basement marriages,” he adds. “More than I can count – at least 30. I had one guy whose band was playing and he cued up all these pictures of their love story and then they stopped playing and he proposed to her. It was great.”

In fact, The Basement was where Cullivan met his own wife, Dre Bang. They met 10 years ago – she was the bar’s manager.

“I think it was alcohol power,” she jokes when first asked how they got closer, before adding, “He looked very tough and everything, but when I worked with him, I realized he was very honest and kind.” The pair now have two daughters together and are co-owners of The Basement and Cullivan’s.

“You never do anything by yourself,” Cullivan says of his wife and everyone who he’s worked with in Korea and abroad at his many successful establishments past and present (in addition to The Basement and Cullivan’s, he currently operates the trading companies KAP and Cullivan’s ASIA, along with a muay Thai gym called Hippo in Ko Samui, an island in Thailand). “I had a lot of good staff and friends. And actually, some of them run other bars and own other bars now. I’m proud of that too.

“If I had stayed in America, I don’t think I would be as happy as I am here,” says Cullivan. “I have these places here that I love. I have two kids and a nice family. Korea’s been great to me.”

“라이브 뮤직과 함께한 밤을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겠습니다. 여러 훌륭한 밴드들이 베이스먼트와 부산대 지역 다른 바를 찾아주었어요. 세이수미(Say Sue Me), 지니어스(Genius) 그리고 –언급 하지 않으면 이 사람들 손에 죽을 거예요- 하지마마(Hajimama)와 같은 밴드들 말이에요.”“베이스먼트에서 결혼한 커플도 많아요.”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셀 수 없을 정도에요. 적어도 30커플은 넘습니다. 베이스먼트에서 연주한 밴드 멤버 중 한 명은 본인의 연애사를 담은 사진들을 전부 갖고 와 공연 중간에 연주를 멈추고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했어요. 정말 멋졌습니다.”
 사실 베이스먼트는 컬리번의 아내 드레 뱅(Dre Bang)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10년 전 드레가 베이스먼트의 매니저로 일할 때 처음 만났다.

어떻게 서로 가까워졌는지 묻자 드레는 이렇게 말했다. “술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터프해 보이는데 막상 같이 일을 해보니 아주 솔직하고 친절하더라고요.” 부부는 현재 두 딸을 키우며 베이스먼트와 컬리번스(Cullivan’s)의 공동 소유자가 되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컬리번은 아내와, 과거와 현재 국내외에서 성공적으로 함께 일했던 모든 사람들(베이스먼트, 컬리번스와 더불어 현재는 KAP와 컬리번스 ASIA라는 무역 회사, 태국 코사무이 섬에 있는 히포라는 무에타이 체육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좋은 직원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중 몇몇은 자신들의 바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죠.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미국에 계속 있었더라면 지금만큼 행복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제가 사랑하는 장소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두 아이와 행복한 가정이 있죠. 한국은 언제나 제게 멋진 곳입니다.”